북제주군의 암 덩어리, 애월읍 공공도서관을 고발한다

저는 애월읍 공공도서관 주민정보 이용실에서 공공근로자로 일하는 고영준입니다.

제가 공공근로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올 해 3월부터입니다. 처음에는 제가 맡은 일이 공공근로인지조차도 모른 상태에서, 그냥 그저 그런 단순한 아르바이트 아니면 파트 타임으로나 하는 것이겠지 생각하면서, 다만 큰 잘못만 저지르지 않고, 모나지 않게 맡겨진 일을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성실하게, 최소한 나태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될 것이라고 믿으면서 지금까지 일을 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내 자신의 재량으로 할 수 있는 게 무언지, 내가 맡은 책임이 어디까지인지 모릅니다. 말을 해 주는 사람도 없었고, 구태여 알 필요도 없으려니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도서관의 계장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그렇게 바쁜 일도 없고, 힘에 부칠 정도로 해야 할 격무도 없고, 그냥 이 곳 저 곳 돌아보다가 지저분한 곳이 없도록 하면 되요. 약간씩, 조금씩만 노력하면 되요."

아니, 이렇게 좋은 일자리가 다 있나?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도 감지덕지할 판인데, 그렇게 바쁜 일도 없고, 힘에 부칠 만큼 일 시키지도 않고 ……. 더군다나 매주 금요일마다 '뇌졸중 장애인을 위한 집단상담치료'까지 운영하고 있는 데다가, 도서관 출입구 공중전화기 옆에는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로 된 건물 안내 그림까지 있어서, 도서관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더 이상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의 이런 장미 빛 그림이 퇴색하고 구겨지는 데에는 단 하루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둘째 날 제가 한 시간 일찍 출근해서 청소를 하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청소용구랑 온갖 잡동사니가 여자 화장실에 있는 건지, 게다가 장애인용 칸에는 문고리 하나가 뜯겨져 나간 채 '고장'이라는 종이 딱지가 하나 붙여 놓고서 온갖 잡동사니를 처박아 놓고 있는 꼴을 보자니,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2002년 8월 17일 현재) 예전에는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수화 교실까지 열었다는 게 믿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off the record: 아마 이 글을 도서관 직원이 읽었다면, 당장 그 '고장'이라는 글을 적은 종이를 치워 버리고, 그 안에 들어있던 너절한 물건들을 다 치워버렸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무고죄'로 나를 고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제가 도서관 직원들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이렇습니다: "좋고 나쁜 것을 떠나서,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약간씩, 조금씩만 …….'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었던 것 역시 나의 크나큰 착오였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도서관 직원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영준아! 이 번 주에 큰 길 주변하고, 건물 옆 잔디밭에 잡초 좀 뽑아야겠다. 사람들이 우리한테 이런 말하면 안 되잖아: '한가하게 시간 보내면서 풀도 안 베고, 잡초도 안 메면서, 안에서 TV나 보고 있다.' 이런 말 들으면, 안 좋잖아." 며칠 후 풀을 베고 잡초를 뽑기는 했는데, '약간씩, 조금씩만 ……' 해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도서관의 일자리가 한직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지만, 사람들의 이목이 따가워서 풀을 베고 잡초를 뽑아야겠다는 그 사고방식이 그렇게 한심할 수 없었습니다. 말을 바꿔서, 사람들 입에서 이런 저런 소리가 안 나오면, 그런 일은 안 해도 된다는 건지 ……. 내가 언제 '한가하게 시간 보내면서' 자리나 지키고 있었다는 건지 ……. 책임 전가를 묘하게 하는 것도 재주는 재주였습니다.

그런데, 이 '한가하게 시간 보내……'기가 정말 사람 잡는 것이었습니다. 하루는 도서관 옆에 자리잡은 체육관에 무슨 행사가 열린다고, 체육관 주변 잔디밭은 풀베기가 깔끔하게 되어 있는데, 도서관 잔디밭은 엉망이라고 당장 풀을 베고 잡초를 뽑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 입에서 이런 저런 소리가' 나올까봐서 ……. 7월말에 태풍이 분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 풀을 베었습니다. 공공근로를 하는 사람 하나하고 공익요원 하나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이틀 동안 풀을 베었습니다. 잡초 뽑기는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뙤약볕 밑에서 땀으로 목욕해 가면서 그렇게 풀을 베었습니다.

풀베기가 끝나고 나서 며칠이 지났습니다. 8월 첫째 주 토요일이었습니다. 예전처럼 이른 아침에 출근하고 나서 자리에 앉았는데, 팩스에 '사역 확인서'라고 쓰여진 문서가 하나 놓여져 있었습니다.

사 역 확 인 서

1. 사업기간: 2002. 7. 24. ~ 2002. 7. 25. (2일)

2. 사역인원: 5명 (연인원 10명)

3. 목적: 애월읍 공공도서관 풀베기 및 잡초 제거

4. 금액: 금 266,600원 (금이십육만육천육백원)

5. 청구내역

금액단위: 원

상기와 같이 사역하였음을 확인합니다.

2002. 08. .

확인자 애월읍공공도서관담당 * * * (인)

도대체 어처구니가 없어 군청 민원실로 전화를 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알아 보려고. 그런데, 제 전화를 받은 군청 직원은 제 이름하며, 집 주소, 직장, 맡은 일자리 등등을 물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또 한 번 놀랐습니다. 마치 자신이 수사관이나 된 것처럼 피의자 신문을 하는 것인냥 하는 태도에 어이가 없었습니다. 내부자 고발이 들어오면, 고발자에 대한 신분 보장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것으로 기대를 한 제 스스로의 태도가 너무도 어리석었고 순진했다는 사실을 질책하기도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차라리, 감사실로 전화를 할 걸, 아니면 그냥 경찰서로 신고를 하고 말 걸 ……. 이런 저런 생각으로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도서관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군청에 무슨 전화를 했냐고. 먼저 도서관 사람들한테 얘기를 해야지, 그렇게 뜬 금 없이 성급하게 굴면 되냐고. 한 식구처럼 같이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야지, 그럴 수가 있냐고.

그리고 나서 며칠이 지났습니다. 수고했다면서, 공익요원 두 명하고, 다른 공공근로 참가자 한 사람하고 저, 이렇게 넷이서 5만원씩 받았습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받으면서 기분 참 착잡했습니다. 아니, 더러웠습니다. 정말 미안해서, 사과하는 마음으로 주는 게 전혀 아니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돈을 주면서, 하는 말들이 이렇습니다: "어느 공공기관에서 여기처럼 공공근로 참가자들한테 책상 마련해 주고 컴퓨터 쓰게 하는 데가 있냐?" 아니, 그럼 언제 공공근로 참가자들이 따로 지낼만한 공간을 사전에 마련해 주기는 했는지, 그리고 공공근로 참가자들한테는 책상 마련해 주고 컴퓨터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기라도 한 건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도 했습니다: "나중에 밖에서 만나더라도 웃는 낯으로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제가 듣기로는 마치, '이렇게 굴었다간 좋은 얼굴로 못 볼 줄 알아라' 하는 식으로 들렸습니다.

모든 걸 털어 버리자고 마련한 자리라는 소리를 듣고, 저는 자초지종을 말하면서, 이런 얘기를 꺼냈습니다: "예전에 공익요원이었던 사람이 '이거 어떻게 되는지 아니? 여기 직원들 먹어 버려'라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꺼낸 게 정말이지 크나큰 실수였다는 것을, '아차'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직원들이 입을 모아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 녀석 보이기만 해 봐라. 그냥 두나 봐라."

저는 지금 도서관에서 흔히 말하는 '왕따'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미운 오리 새끼'처럼 주변을 겉돌고 있습니다. 아니 제 스스로가 제 자신을 그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나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예전의 그 공익요원처럼 될 게 뻔하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기 때문입니다.